
‘인과성’이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상관관계가 인과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많이들 들어 보셨을 텐데, 이건 너무 쉽고 이젠 유치한 수준이라 겨우 이런 얘기를 하려는건 아닙니다.
최근 들어 ‘인과관계’라는 말처럼 오남용이 심하고 잘 못 이해되고 잘 못 해석되는 단어도 없는듯해요.
“백신 접종과 자가면역질환 증가의 ‘상관관계’가 관찰 된다”라는 말을 하면 어김 없이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타나서 “인과관계가 증명된건 아니다” 라고 토를 달며 방어적인 태세를 취할때 사용하는 문구가 되었습니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분 못하는 의사가 없는데 쓸데 없는 소리 하는거에요.
https://cafe.naver.com/drjoshuacho/47008
문제는, 그런 말을 되뇌이는 사람 치고 ‘인과관계’의 진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도 드뭅니다.
‘인과성’이라는 단어에 부여된 가치에 대해 조금 얘기해 볼께요.
현대의학에서 많은 경우 ‘인과성’은 ‘중요하다’는 뜻과 동일시 됩니다.
모든 것은 이미 결론이 났고 그렇게만 접근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태도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LDL과 ApoB가 심혈관질환의 원인(인과성)이라는 말이 사실일 수 있지만, 그것이 바이오마커 (LDL 수치)만 치료하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LDL이 심혈관질환에 관여하냐?
라고 묻는다면 답은 ‘예’ 맞습니다.
하지만 LDL이 단독으로 심혈관질환의 원인이냐?
라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오’ 입니다.
높은 LDL 수치가 심혈관 질환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의사에게, LDL이 ‘유일한 원인’이냐고 되물으면 대부분은 ‘그건 아니다’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치료 접근법을 보면 마치 답을 ‘예’라고 한 것처럼 치료를 합니다.
언행일치가 안되고 앞뒤가 안맞습니다.
다른 변수가 있다는 것을 모든 의사들이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혈압을 무시할 수 없고,
염증을 무시할 수 없고,
혈당을 무시할 수 없고,
대사기능 이상도 무시할 수 없고,
당질피질 상태도 무시할 수 없는데
이 것들은 LDL과 아무 상관이 없지만 심혈관질환에 심각하게 작용합니다.
하지만 이런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고 LDL 수치가 높으면 무조건 낮추려 하고 그것도 오직 약물로만 낮추려고 합니다.
원래 사람이 간편한걸 좋아해서 약물치료를 통해 LDL을 낮추는 것이 간편하고, 설명하기 쉽고, 빠르지만, 심혈관질환을 실제로 예방하고 치료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은 간편하지도 않고, 쉽지도 않습니다.
‘LDL수치가 높으면 낮춰야 한다’ 또는 ‘LDL 수치는 낮을수록 좋다’라는 것이 현대의학의 유일한 치료가 된 배경에는 ‘스타틴 약물치료가 안전하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음과 동시에 ‘인과성’을 과신하는데 있습니다.
‘인과성’과 ‘유일한 인과성’은 하늘과 땅처럼 다릅니다. 어쩌면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보다 더 거리가 먼 단어일 수 있습니다.


